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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그마르 베리히만의 <제7의 봉인>

혼돈과질서 2022. 4. 19. 03:45

 

 

도대체 이게 왜 고전명작일까?

대사의 메세지도 스토리도 특이해보이진 않는데 말이다.

단지 죽음이라는 추상적인 것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했다는 것이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

애초에 고전을 현대의 잣대로 보면 안되는 것인가?

무슨 말이냐면 지금 비슷한 주제의 컨텐츠는 수도 없이 만들어지잖아.

근데 이 영화 당시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담았기에 영화 역사적으로 가치를 지니는 것인가?

 

이런 식으로 고전을 그냥 읽는 것은 아무런 효용 가치도 주지 못한다.

그저 고전을 봤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지식 자랑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뭐 그렇다고 완전히 쓸모없는 경험은 아니었다.

십자군전쟁과 페스트라는 역사적 사실과 신에 대한 내용을 알게 되었다.

이게 하나의 레퍼런스로 되어 이후 컨텐츠를 소비하며 생각할 때 유용한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

 

 


큰 의미를 뽑아내려는 것보단 시간을 대하는 태도를 기른다는 측면에 주목해보자.

모든 것이 쉽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다. 가치가 쉽게 매겨지고 버려지는 세상이다.

그러나 수십 년동안 살아남아 가치를 인정 받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에 대한 존경과 경외의 태도를 기르고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시간의 각인.

이미 고전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세상을 떠난 지 오래이다.

고전을 보는 것 자체가 죽음을 마주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저렇게 열정을 다하는 배우들, 감독들은 무엇을 표현하고 무엇을 지금의 우리에게 남겨주고 싶었을까?

지금의 나도 언젠가 빛바래 죽을텐데, 이 시간 속에 나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전달하고 싶을까?

 

죽음, 유한하다 그러나 무한할 수 있다. (유한성과 불멸성)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진시황도 불로초로 영생을 얻고 싶었지만 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시간의 공포, 죽음을 마주하며 어떤 고민을 취했을까?

죽어도 죽지 않는 법을 생각해내지 않았을까?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평생 살아남는 법.

그건 바로 시간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인간은 이름을 남긴다.

그 이름은 후대에 전달되고 또 전달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영혼의 불멸성을 누리게 된다.

 


일단 제목이 뭔 뜻인가?

- 1~6은 뭔가?

- 봉인? 열린다? 열리면 죽는 건가?

 

배경 - 십자군 전쟁과 페스트

- 몇 세기야? 이 때 종교의 위상은 어땠어?

 

감독

- 의도가 뭐야? 뭐하는 사람이야?

 

의의

- 이후 어떤 작품들에 영향을 주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