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과질서, 쓰기의 공간
영상매체비평 3주차 과제《버닝》 본문
미스테리를 다룬 영화
해답이 없고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영상매체비평 3주차 과제
《버닝》
조르주 바타유는 ‘성스러움은 추하다 일상의 바깥에 존재하기 때문에. 폄하의 대상과 숭배의 대상은 같다’라고 말했다. 《버닝》은 세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내러티브가 흘러가는 영화다. 종수와 혜미 그리고 벤은 각각 다른 욕망을 지닌 인물로서 그들의 욕망을 살펴보면 바타유가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리틀헝거인 종수와 혜미의 삶의 방식과 그레이트헝거인 벤의 그것은 본질적으로 같다. 모두 끊임없이 결핍을 가지며 보이지 않는 허상을 욕망하는 존재들이다. 이 욕망의 대상들은 자위, 소설, 귤, 비닐하우스 등으로 변주하면서 나타난다. 우선 ‘리틀 헝거’인 종수는 자위와 소설을 통해 욕망을 드러낸다. 자위는 실제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닌 허상을 두고 하는 행위다. 소설은 실제 인물의 얘기가 아닌 작가에 의해 가공된 허상의 얘기이다. 이런 종수의 모습은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비참하게 보인다. 축 처진 어깨와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걸음걸이, 용달차 등은 그러한 느낌을 부가시킨다. 또 다른 ‘리틀 헝거’인 혜미는 귤과 아프리카 부족의 춤을 통해 욕망을 드러낸다. 혜미는 귤이 없어도 있는 것처럼 생각하면 침이 나온다는 얘기를 하며 허상에 빠져있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삶의 의미를 찾겠다고 하지만 현실은 카드 빚으로 허덕이는 철부지다. 다음으로 ‘그레이트 헝거’인 벤은 비닐하우스를 통해 욕망을 드러낸다. 비닐하우스란 여성을 상징하며 비닐하우스를 태웠다는 것은 기존에 곁에 두었던 여성을 통한 즐거움이 해소되었다는 것이다. 벤은 혜미를 곁에 두고 이후에는 다른 여성과 함께 모습을 나타낸다. 벤은 여성을 일회용품처럼 대체하며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그레이트 헝거’도 결국엔 ‘헝거’의 한 부류다. 벤은 겉으로 보기에는 재력이 넘쳐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나 그도 결핍에 허덕이는 인물이다. 그는 여성의 소지품을 전리품처럼 쌓아놓고 매번 여성을 바꾸지만 자신의 결핍을 채우지 못한다. 그는 자신들의 친구들과 함께하는 파티에 여성들을 초대하지만 하품을 하며 지루해한다. 또한 대마초를 피우며 불안함을 없애려고 한다. 파티에서 혜미가 추는 우스꽝스러운 춤은 ‘그레이트 헝거’들에게, 영화를 보는 우리들에게 비웃을 자아낸다. 그러나 영화는 ‘그레이트 헝거’들의 모습도 ‘리틀 헝거’들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포스터에 실린 글귀인 ‘이제 진실을 얘기해봐’는 이러한 내용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미디어에서 나오는 연예인들과 재벌 등의 모습은 대다수의 ‘리틀 헝거’들에게 비참함을 느끼게 해준다. 우리는 그들의 화려해 보이는 외모와 옷차림에 열광하고 우리의 그것을 외면한다. 그러나 무엇이 성스럽고 추한지 구별하는 기준이 명확한지 살펴보아야 한다. 사실은 서로 같은 모습이 아닌지, 우리가 허상에 빠져 잘못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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